기아차 회장의 출퇴근용 차량이었던 슈마

Posted by DAKI MAGAZINE
2017.12.25 15:35 자동차 스토리&차소서&차소설

기아자동차의 슈마, 한때 티뷰론을 누르고 국내 스포츠 세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 출시한 자동차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들 중 슈마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실제로 주변 사람 몇 명에게 “자동차 슈마 알아?”라고 물어보니, “슈마? 퓨마 아냐?”, “뭐야 그게, 슈가는 아는데?”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분명 자동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지만 잊힌 슈마, 과연 어떤 자동차고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기억을 되새김질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슈마는 1997년 12월 5일 정식 출시된 준중형 스포츠 세단이다. 사실 실제 공개된 날은 1997년 11월 20일로, 기아차 신차 종합발표회에 카니발, 파크타운, G-2, 델타, 레토나, 스포티지 등과 함께 등장했다.



당시 기아차는 IMF 여파로 인해 기업이 위태로웠던 시기로, 판매 실적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때 기아차의 법정관리인으로 정부가 파견한 기아그룹 진념 회장이 슈마를 출퇴근용 자동차로 이용할 의사를 내비칠 정도로 슈마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슈마가 정식 출시되기 전 기아그룹 간담회에서 진념 회장은 “슈마가 나오면 엔터프라이즈 대신 당분간 슈마를 타고 출퇴근하겠다.”라고 언급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한 그룹의 회장이 준중형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요즘이더라도 비슷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말이다. 덕분에 엔터프라이즈나 포텐샤로 출퇴근하던 임직원들은 회장을 따라 슈마로 바꿔야 하나 잠시 어수선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슈마(SHUMA)는 최고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수마(SUMMA)와 야생동물 퓨마(PUMA)의 합성어다. 날렵한 야생동물 같은, 최고의 세단이라는 의미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일부는 F1의 전설 슈마허의 이름에서 따온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슈마는 세피아2의 파생 모델로, 현대 티뷰론이 선점하고 있는 스포츠카 시장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이에 맞는 자동차 날렵하고 스포티한 느낌의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좀 더 살펴보면 유럽형 곡선 디자인에 두 개의 원형 헤드램프를 배치해 특이한 모습이었으며, 설계 초기부터 국내 신세대를 주요 타깃으로 설정했으며 유럽 스타일의 스포츠 세단으로 수출을 고려한 모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 현지촬영을 통해 TV 광고를 제작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하지만 보닛의 굴곡과 둥근 헤드램프 등이 WRC에서 잘 나가던 토요타의 셀리카와 닮았다는 의견이 많아, 일각에서는 베낀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 적이 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외부 디자인과 비슷하게 곡선형 디자인이 주를 이루었으며 운전자 위주의 센터패시아와 각종 구성이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너무 평범한 나머지 운전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엔진 성능은 1.5 SOHC, 1.5 DOHC, 1.8 DOHC 세 종류의 가솔린 엔진을 얹어 90/101/130마력에 13.1/14.0/17.0kg.m 토크 성능을 갖췄다. 연비는 15.2/15.3/13.6 km/L로 평범한 수준이었다. 당시 기아차 관계자는 “정통 스포츠카 엘란의 엔진을 이식해 출력과 순간 가속이 뛰어난 것이 장점이다.”라고 언급해 이 차가 펀 드라이빙에 무게를 둔 모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슈마에 장착된 엔진이 다이내믹한 주행성능을 갖추고 있다고 알려져 잠시 동안 모터스포츠용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한때 미국 수출길에 오른 적도 있었으며 슈마라는 이름 대신 ‘스펙트라(Spectra)’로 수출됐다. 스펙트라는 스펙트럼의 복수형으로 미국 전역에 빛처럼 널리 퍼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 슈마는 1999년 한 차례 연식 변경이 있었다. 외관 디자인 보다 내부 편의 사양 개선을 진행한 것으로 시트 색을 푸른색에서 회색 계열로 변경했으며 스티어링 휠과 기어노브에 적용된 가죽 색상을 검은색과 빨간색으로 혼합 처리해 내부 인테리어를 좀 더 스포티하게 다듬었다.



하지만 티뷰론에 밀리고, 여러 원인이 합쳐지면서 판매량이 저조했고 이후 페이스 리프트 차종인 스펙트라 윙이 출시되면서 단종됐다.   



슈마는 IMF 시기 휘청이던 기아차의 구원투수로 등판했으나 단종 될 때까지 주목할 만한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주행성능만 봐서는 당시 기준으로 나름 쓸만했으나, 스포티한 이미지에 맞지 않은 너무 평범한 실내 디자인과 더불어 구매층이 취약했다는 것이 실패 요인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특히 구매층의 경우 IMF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수많은 직장인들이 거리로 내몰리면서 예상했던 소비 규모에 턱없이 모자란 수준을 유지해 실수요자가 거의 사라지다시피했다. 그나마 구매의사를 보였던 소비자들도 티뷰론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단종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가난한 집 사정에도 불구하고 슈마와 같은 스포츠 세단을 내놓는 배짱은 높이 살만하지 않을까? “집이 어려워도 할 일은 해야 한다.”라는 소리 없는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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