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디자인을 만든 피터슈라이어, 루크 동커볼케, 이상엽

Posted by DAKI MAGAZINE
2018.02.18 11:10 자동차 스토리


현대기아차는 언제부턴가 그들만의 고유 디자인을 구축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높여나가고 있다. 덕분에 세계 10위 안에 드는 글로벌 회사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공을 위해 수많은 직원들의 노력과 더불어 외부인사 삼인방의 활약이 큰 역할을 했다.



여기서 삼인방은 피터 슈라이어, 루크 동커볼케, 이상엽을 의미한다. 아마 여러 매체를 통해 한 번쯤 들어봤던 이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인물들이며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상세히 알아보기는 힘들다. 이 세 명의 스타 디자이너들은 과연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현대기아차의 디자인 혁신은 공교롭게도 현대자동차가 아닌 기아자동차에서 시작됐다. 기아차는 2000년대 중반, 야심작 로체가 시장에서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정의선 당시 기아차 사장(현재 현대차 부회장)은 기아차의 미래는 디자인에 달려있다는 판단을 내려 2006년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 디자이너를 기아차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로 영입하게 된다.



이때만 해도 현대기아차는 임직원에 대한 순혈주의 분위기로 외국인 전문가 영입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 아니,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이처럼 극도로 경직되어있던 내부 구조에 변화를 주려 했던 정의선 당시 기아차 사장의 판단은 모험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기아차 디자인 혁신으로 이어졌고 K 시리즈 등 수많은 모델이 성공을 거두면서 무리수가 아닌 신의 한 수였음을 증명했다.

 

기아차의 일등공신인 피터 슈라이어는 아우디의 월터 드 실바(Walter De Silva), BMW의 크리스 뱅글(Chris Bangle)과 함께 ‘유럽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불린다.



그는 1953년 생으로,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태어났다. 자동차 디자인과의 인연은 뮌헨대학 산업디자인 학과 재학 중 아우디 인턴생활이 시작점이었다. 


당시 피터 슈라이어는 아우디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엘리트였으며, 졸업 직후인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아우디의 지원으로 런던 예술 대학에서 운송기기 디자인(transportation design) 분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를 받은 1980년부터 아우디에 정식으로 입사해 차량 외관 및 실내 인테리어, 그리고 콘셉트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피터 슈라이어는 1991년 아우디 캘리포니아 디자인 스튜디오로 이동했고 1992년에는 아우디 디자인 콘셉트 스튜디오로, 1993년에는 폭스바겐의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부서로 이동했다. 


이렇게 십수 년 간 아우디와 폭스바겐에 열정을 쏟은 결과 1994년에는 아우디 디자인 총괄을 맡게 됐다.



피터 슈라이어의 전성기는 바로 아우디 디자인 총괄 직책에 오른 이후부터다. 그가 총괄직에 있으면서 공개한 모델 중 대표적으로 아우디 TT가 있는데, 이 차량은 오늘날까지도 아우디를 상징하는 모델로 유명하다.



아우디TT는 곡선미를 강조한 차량으로 199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콘셉트카로 등장했다. 그동안 아우디는 직선을 강조한 투박한 느낌이었다면 아우디TT를 통해 외부 및 내부 디자인에 ‘원’을 표현해 자동차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게다가 이 차량이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면서 일각에서는 “아우디TT는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자동차 디자인 중 하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아우디TT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이후 피터 슈라이어의 디자인 철학은 더욱 탄력이 붙어 아우디 A4, A6 등 대표 모델도 그의 디자인이 적용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독일 연방디자인대상, 시카고 굿 디자인상, 독일 산업포럼 디자인상 등 디자인과 관련된 수상식에서 그의 이름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2002년부터는 폭스바겐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골프, 제타, 뉴비틀 등을 담당해 신화를 이어갔다. 덕분에 아우디와 폭스바겐 매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됐고, 적자의 늪에서 헤매던 아우디를 흑자로 전환시키는 등 다양한 공로를 세웠다. 



이렇듯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가 2006년 기아차 디자인 총괄을 담당하면서 또 다른 기록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기아차에 대한 이미지 개선 작업이었다. 


당시 피터 슈라이어는 “기아차는 특징이 없었다. 얼핏 보면 일본차 같았다.”라고 기아차에 대한 첫인상을 언급한 바 있다.



즉, 과거의 허물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는 의미다. 그는 기아차를 상징할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개발진과 다양한 의견을 나눴고, 도중에 동물의 얼굴을 형상화하자는 의견을 수렴해 실제 양산 모델에 적용했다.



덕분에 기아차에서 출시된 모든 모델들은 진정한 얼굴인 ‘타이거 노즈’ 그릴을 가지게 됐다. 이후 야심 차게 준비한 K 시리즈가 K5를 주축으로 대성공을 거두게 됐고 모하비, 쏘울, 포르테 등 대부분의 모델들이 출시할 때마다 준수한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피터 슈라이어의 성공신화는 현대기아차 내부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됐고, 이후 외부인사 영입 추진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것으로 인정받아 영국 왕립예술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참고로 이 명예박사 학위는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세르지오 피닌파리나 단 두 명만이 받아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2013년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 승진해 이제는 현대기아차에 없어서는 안 될 중역이 됐다.   



현대기아차는 피터 슈라이어의 성공을 바탕으로 더욱 공격적인 인재영입에 나설 준비를 했다. 당시 피터 슈라이어는 자신의 업무를 이어받고, 고성능 자동차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인재를 물색 중이었는데 이는 본인의 은퇴시기와 2014년 영입한 알버트 비어만 시험 및 고성능차 담당 부사장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알버트 비어만은 BMW의 고성능 모델 ‘M’의 사령탑으로, 현대기아차의 고성능 모델 ‘N’의 개발과 더불어 제네시스 브랜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알버트 비어만과 함께 할, 고성능 모델을 위한 디자인 개발에 새로운 인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피터 슈라이어는 루크 동커볼케(Luc Donckerwolke)에게 현대기아차로 오라는 러브콜을 보냈다. 



루크 동커볼케는 벤틀리에서 외관 디자인을 담당한 인물이다. 1965년 생으로 페루 리마에서 태어나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이후 벨기에에서 산업공학을, 스위스에서 운송기기 디자인을 배웠다. 특히 영어를 시작으로 한국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아프리카 스와힐리어 등 총 8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을 통해 그의 천재성을 간접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는 1990년 프랑스 국민기업 푸조를 첫 직장으로 자동차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독일 바이에른 주로 건너가 아우디의 디자인 부서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4년부터 2년 동안은 폭스바겐 산하의 체코 자동차 제조사 스코다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그의 황금기는 1998년부터 시작됐다. 루크 동커볼케는 스코다에서 다시 아우디로 돌아와 A4 Avant와 R8 Le Mans Racer 등 여러 차량 개발에 참여했다. 


1998년에는 AL2 Concept로 ‘올해의 유럽 디자이너 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 디자이너로 떠오르게 됐다. 이후 슈퍼카의 대명사 폭스바겐 산하 람보르기니로 보금자리를 옮겨 디아블로, 무르시엘라고, 가야르도를 잇따라 디자인했다. 

 

그는 2005년까지 람보르기니에서 근무했는데, 그동안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등 전 세계 주요 디자인상을 15차례나 수상했다. 




2006년에는 아우디 브랜드 총괄을 담당하게 된 월터 드 실바를 대신해 폭스바겐 산하 스페인 자동차 기업 세아트에서 차량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폭스바겐 그룹 디자인 부서로 이동한 더크 반 브레켈(Dirk van Braeckel)을 대신해 폭스바겐 산하 벤틀리의 수석 디자이너 직함을 달게 됐다. 


이곳에서 그는 벤틀리 콘티넨탈 플라잉 스퍼, 벤틀리 EXP 10 SPEED 6 콘셉트카 등을 담당했다. 참고로 EXP 10 SPEED 6 콘셉트카는 미래 벤틀리의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한 모델로 유명하다.

 

그리고 2015년 말, 벤틀리를 나와 현대차 디자인센터장 직책으로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으며, 현대차의 단독 브랜드 제네시스 출범과 큰 관련이 있었다. 


제네시스는 현대차의 독립 프리미엄 브랜드로, 때로는 고성능을 지향하는 라인업을 갖추는 중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측면에서 알버트 비어만을, 디자인 측면에서 루크 동커볼케의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루크 동커볼케는 일반 승용차, 슈퍼카, 럭셔리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량을 디자인 해왔기 때문에 조화와 균형을 중요시하는 제네시스 브랜드에 가장 적합한 인재로 손 꼽힌다. 그의 현대차 내에서의 대표작으로 제네시스 브랜드의 SUV 콘셉트카 GV80등이 있다. 

 

그는 최근에 2018년 정기 임원 승진자 명단에 포함돼 현대 디자인 센터장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됐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승진 배경으로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루크 동커볼케의 현대차로의 이직이 완료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벤틀리 외관 디자인 총괄 직책을 담당한 인물이 추가로 영입됐는데, 바로 이상엽 디자이너다. 이상엽은 한국인 디자이너로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스타 디자이너다.


그는 1969년 생으로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 보게 된 포르쉐에 푹 빠지게 되어 1994년 홍대 조소과를 졸업한 이후 1995년 미국 아트 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ACCD : Art Center College of Design)에 입학해 자동차와의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 학교는 자동차, 제품, 엔터테인먼트 등 산업과 관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한 학교다. 



이후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피닌파리나, 포르쉐에서 경험을 쌓다가 1999년 ACCD를 졸업하고 GM에 선임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GM에서 그는 쉐보레 콜벳 스팅레이, 카마로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쉐보레 카마로의 경우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범블비’로 출연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상엽은 2010년 GM을 벗어나 폭스바겐 미국 디자인 센터로 이직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당시 그는 “독일차들은 같은 크기에도 실내를 더 잘 뽑는 점에 대해 항상 궁금해했다.”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하는데, 미국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독일차를 배우기 위한 욕구가 강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유럽은 민족주의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인종을 크게 따지지 않고 오로지 실력만 보고 채용한다."라는 말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런 점도 폭스바겐으로 이직하려는 마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이상엽은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그룹 내 아우디, 포르쉐, 람보르기니, 스코다 등 다양한 브랜드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2012년 말에는 벤틀리 외장 및 선행 디자인 총괄을 맡아 벤틀리 플라잉스퍼, 벤틀리 컨티넨탈 GT, 벤테이가, EXP 10 SPEED 6 콘셉트카 등의 모습을 그려냈다. 

 

여기까지 보면 벤틀리 시절부터 루크 동커볼케와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시기상으로 봤을 때 루크 동커볼케가 1년 먼저 벤틀리와 인연을 맺고 이듬해 이상엽이 들어왔다. 


이후 벤틀리 플라잉스퍼를 시작으로 컨티넨탈GT, EXP 10 SPEED 6 콘셉트 디자인 등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손발을 맞춘 경험이 있다.



2016년에는 루크 동커볼케에 이어 현대 디자인센터로 이작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스타일링 담당 상무로 활동하면서 루크 동커볼케와 함께 현대차와 독립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디자인을 결정하게 됐다.



현대 디자인센터에서 두 디자이너는 현대차와 제네시스 브랜드에 들어가는 모든 내외장 디자인, 컬러, 소재 등 모든 것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상엽과 루크 동커볼케의 역량이 집중된 첫 차량으로 GV80이 될 것으로 보여 제네시스 브랜드 디자인의 앞날이 기대되고 있다.

     

현대차는 기업의 순혈주의를 과감히 버리고 세계 유명 디자이너 영입에 사활을 걸었다. 단순히 “같이 일합시다.”가 아닌 “기업의 명운이 달려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수준의 영입이었다. 특히 정의선 부회장의 피터 슈라이어 영입을 위한 삼고초려는 이미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피터 슈라이어의 영입으로 시작된 기아차 혁신은 현대차로 이어졌고 루크 동커볼케와 이상엽의 영입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견고하게 다지는 중이다. 


그리고 더욱더 발전하기 위해 해외 인사 영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 현대차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기대된다.

 

현대차는 글로벌 기업이다. 그동안은 독일, 미국, 일본의 기술을 전수받아 기술 독립에 힘썼다면, 이제는 기술 독립을 넘어 기술 및 디자인 트렌드를 주도하는 일등 기업으로 발돋움할 시기다. 


이를 위해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혁신을 일궈내기 위해 내부로부터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지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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