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18년 된 중고차를 물려받았나?

Posted by DAKI MAGAZINE
2018.05.28 07:54 자동차 스토리


해당 내용은 mpv를 타고 있는 독자 한 분을 대상으로 사실을 기반으로 각색한 내용입니다. 

앞으로 독자님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연재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18년 전, 궁궐같던 녀석 카렌스



고치고 때 빼고 광내며 함께 해온 오리지널 카렌스다.


검은색에 투박한 디자인, 넓은 공간과 탁 트인 시야가 특징인 이 녀석. 바로 내 생에 첫 자동차인 카렌스다. 그것도 요즘 카렌스가 아닌 1세대 (2000년식)다. 18년이나 지난 이 차량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차량으로, 운전연습을 위해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여러모로 도움이 된 녀석이다.


곳곳이 조금씩 찌그러지고 녹이 슬었지만 당시에는 선루프까지 추가된 GOLD 트림이었다.


카렌스는 생각보다 넓다. 2열 시트를 접으면 냉장고도 들어갈 기세다.

요즘은 보기 힘든 방식의 기어 레버

잡동사니를 치운다는 것을 깜빡했다.




18년 전 이 녀석이 갓 출고된 상태였을 때 햇빛에 반사된 겉면은 새 차임을 과시하듯 광택이 살아있었고, 아직 뜯지 않은 내부 시트 포장 비닐 밑에서 새 차 냄새가 코를 찔렀다. 특히 부모님께서 차를 바꾸기 전에는 89년식 프라이드를 몰고 다니셨기에 카렌스로 넘어오면서 확 넓어진 공간은 어린 나에게 있어 다리를 쭉 펴고 누울 수 있는 궁전이자 아지트 같았다.



부모님께서는 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셨다. 처음에는 “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 말씀하시며 주말마다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여러 박물관과 명승지에 데리고 다니셨다. 몇 년이 지나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공부하는데 피곤하면 안 된다!”며 이 녀석을 끌고 학교와 학원까지 바래다주시기까지 했다. 

 

게다가 치킨 집을 잠깐 운영하실 때에는 배달 차로 사용하시는 등,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다양한 용도로 알뜰살뜰히 녀석을 몰고 다니셨던 것 같다. 

  

평생 운전 안 할줄 알았는데... 결국은 하는구나


18년을 함께 해 온 차 키


시간이 흘러 군 전역을 하고 운전면허를 갓 딴 직후, 아버지께서는 “너도 사회생활하려면 운전은 미리미리 연습해놔야 한다.”며 운전연수를 위해 잠깐잠깐 차 키를 건네주셨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어린 마음에 “나중에 운전을 해 봐야 얼마나 한다고… 그냥 대중교통이나 타고 출퇴근하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 

 

이렇다 보니 며칠 동안 하는 둥 마는 둥 운전연습을 하다가 여러 핑계를 대고 운전연습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나중에 후회할걸?”이라고 말씀하시며 오묘한 미소를 보이셨다. 별 의미 없이 툭 던진 말 같았지만 몇 년 뒤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작년 8월, 적당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늦은 것 같은 28살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입사 직후만 해도 조금 일찍 일어나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하면 만사 오케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잦은 야근에 차가 끊기는 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있다 보니, 내 차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끄러운 추억 카렌스가 어때서!



하지만 차를 사기에 내 주머니 사정은 빠듯했고, 부모님께 보태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풍족한 집안도 아니었다. 소위 ‘흙수저 집안’이었기에, 선택지는 중고차 구매밖에 없었다. “경차여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로 값싸고 좋은 차량을 알아보던 중 부모님께서 “차 사면 집 살 돈 못 모은다.”고 하시며 “카렌스 키 줄 테니까 보험 들면 그때부터 네가 몰아”라고 하시며 선뜻 키를 건네주셨다. 


15만 킬로밖에 타지 않았다. 장거리 운전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18년 된, 이제는 구닥다리 차량이었지만 내 형편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복에 겨워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차량 구매 비용 세이브에, 보험만 가입하면 되는 상황이었으며 LPG 차량이었기 때문에 기름값 부담이 매우 적었다. 2만 원이면 연료게이지 다섯 칸 중 두 칸 반이나 찰 정도였다.



물론, 받자마자 의기양양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차 키를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등학교 동창회를 나갈 일이 생겼다. 그동안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감과 함께 짝사랑하던 수정이(가명)가 나온다기에 내심 들뜨기도 했다. 동창회 당일, 친구들과 한창 놀고 헤어질 무렵 수정이에게 “너 집 XX 동이지? 가는 길이니까 태워줄게”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최고의 튜닝은 조수석 튜닝이다.”라는 명언을 어디서 주워들은 적이 있어 무릎담요에 자동차 향수까지 준비했기에 가능했던, 쌈마이 한 자신감이었다.



이때 친구 중 한 녀석이 스마트폰을 주섬주섬 꺼내 몇 번 터치를 하자 내 옆에 세워져 있던 차량 한 대에 시동이 켜졌다. 속으로는 ‘와,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시동을 켜나 보네 신기하다.’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원래 알고 있던 기능 인양 쿨한 척을 했다.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XX야, 너 차 갖고 왔다며, 어딨어?” 그 녀석이 나에게 던진 말이다. 18년이나 지난 카렌스가 바로 앞에 있었지만 바로 대답하기 망설여졌다. 수정이도 옆에 있는데 그걸 왜 물어가지고… 그냥 조용히 집에나 갈 것이지! 

 

내 차가 생겼다는 자신감과 어린 시절 궁궐처럼 커 보였던 위풍당당한 모습은 친구 녀석 차 와 비교하니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이던지… 게다가 수정이와 그 친구 녀석이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씁쓸하기도 했다.

 

결국 자신 있게 집까지 태워주기로 했던 당당함은 사라지게 되었고, "얘들아, 나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미안해 먼저 가 볼게”라며 차를 타지도 않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역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쓸데없이 부끄러워했던 것은 아니었나 살짝 후회를 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내게는 그 어떤 차 보다 멋지고 좋은 자동차인데.. 가슴 펴고 당당히 “이게 바로 내 차다!”라고 말해도 괜찮았을 법했다. 그 뒤로는 값비싼 외제차가 내 옆에 있다 할지라도 당당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말처럼 쉽진 않았지만...

  


차는 있었지만, 장롱면허

쉽게 따서 좋았지만 도로 위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어찌 됐든 카렌스를 물려받으면서 차 문제는 해결됐다. 하지만 내가 장롱면허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떠오르자 한숨이 먼저 나왔다. 평소 운전연습을 하지 않은 탓에 브레이크 페달과 가속페달만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운전면허 간소화 당시 면허를 따는 바람에 운전 기초 상식은 엿 바꿔 먹은 지 오래였다. 덕분에 운전면허는 반드시 어렵게 따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등병 노랑 딱지와 같은 힘을 발휘하는 초보운전 표지

문득 고생길이 열렸다는 것을 깨닫자, 아버지의 “나중에 후회할걸?”이라는 말씀이 떠올랐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랴? 출퇴근은 해야겠고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카렌스 뒤통수에 ‘초보운전’문구를 큼지막하게 붙여놓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차선유지도 제대로 못하고 60킬로 이상 밟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특히 후진 주차를 잘 못해 여유 넘치는 공간에서도 5분 넘게 주차를 하는 묘기를 펼쳤다. ‘김여사’를 뛰어넘는 어떤 존재였던 것 같다. 행여나 고급 수입차가 주변에 있으면 흠집 날까 두려워 멀찌감치 거리를 뒀고 주차공간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곳을 찾기도 했다.


운전을 하다보면 이것저것 깨닫게 된다?



다행히 사고 없이 수개월 동안 운전을 하게 되었고, 운전이 어느 정도 몸에 익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감속을 하다 보면 브레이크가 밀리는 것 같아 정비소에 가면 브레이크 패드가 많이 닳아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차가 많이 출렁인다 싶어 검사를 받아보면 서스펜션이 나갔다는 정비사의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특히 지갑 사정이 얇다 보니 연비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는데, TV에서 연비왕이 2천 rpm을 넘기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문득 생각나 도심 주행 시 1600~1800rpm에 맞추며 운전을 했다. 가뜩이나 옛날 LPG 차량이라 출력도 좋지 않은데, 낮은 rpm으로 운전을 하다 보니 천천히 속력이 올라갔다. 최대한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1차선은 피했고, 초보운전 표지를 붙이고 다녔기에 경적을 울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고속도로 주행 시에는 가속페달을 밟는다 하더라도 차량 노후화로 인해 제대로 속력을 내기 힘들었는데, 엔진에서는 굉음이 들렸고 변속기도 오래되어 고단으로 변속할 때 제대로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결국 최근에 이 녀석을 폐차를 하기로 결정했다. 브레이크 패드 교체, 서스펜션 교체, 변속기 교체 등 수리 비용을 계산해보니 카렌스를 중고차로 판매했을 때 나오는 금액을 초과하는 수리 견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즉,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어찌 됐든 18년 추억이 깃든 카렌스를 폐차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휴대폰을 들고 폐차장을 알아보고 있기는 하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다. “자동차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느새 카렌스에 애정을 가지게 된 부분은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가속페달을 밟아 속력을 올리고 핸들을 돌려 방향을 돌리는 등 내 뜻대로 움직여주는 이 녀석은 인생의 동반자라는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살짝 들어갔지만, 내가 박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 박고 도망갔다.


앞으로 폐차 후에는 곧바로 차를 구매하기 어려울 것 같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선수금으로 지불할 만큼의 금액이 모인다면, 그 때가서 고민해볼지도 모르겠다. 제2의 ‘그 녀석’이 생기게 된다면, 18년을 넘어 20년까지 이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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