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부품 만들던 회사, 볼보에 이어 벤츠까지? 지리자동차 스토리

Posted by DAKI MAGAZINE
2018.06.08 03:31 자동차 스토리


볼보 인수에 이어 벤츠 1대 주주까지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지리자동차. 이름만 들어도 중국 브랜드라는 것 알 수 있지만, 생소한 회사가 글로벌 브랜드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중국의 헨리 포드가 세운 제조사’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떠오르는 샛별 지리자동차, 과연 어떤 브랜드 일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21살 청년, 냉장고 부품회사를 차리다



1984년 중국 저장성 출신 21살 청년 리슈푸는 냉장고 부품 제조사를 공동 설립했다. 하지만 부품을 제조할 만한 기술력이 부족했던 터라 냉장고 증발기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해 관련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상하이에서 냉장고 부품 기술 전문가를 초빙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설립 2년 만에 냉장고 부품회사에서 덩치를 키워 ‘베이지화’라는 냉장고 공장을 설립하게 된다.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화교 등 해외 자본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경제성장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국민 생활수준 또한 향상되었다.

 


리슈푸는 중국 경제성장에 따른 냉장고 수요 폭증 덕분에 막대한 자본을 쌓았다. 하지만 1989년 정부 정책에 따라 지정 업체에서만 냉장고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생산 자격을 갖추지 못하게 된 베이지화는 문을 닫게 되었다.

  

냉장고가 안 된다면, 오토바이 도전!



냉장고 사업으로 부자가 된 리슈푸였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는데, 바로 오토바이 타이어 사업이었다. 막연히 잘 될 것 같아서 뛰어든 것이 아니라, 당시 중국 경제상황을 살펴본 후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더욱 추진력 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한다.

 

오토바이 바퀴 사업을 위한 그의 첫걸음은 국영 오토바이 회사였고, 오토바이 바퀴 공급 관련 사업을 제안했다. 그러나 단칼에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리슈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우체국에 오토바이를 납품하는 국영 공장을 사들이는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한다. 

 

그는 단순 조립만으로 기업을 성장시킬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려 연구개발에 집중했다. 덕분에 오토바이 커버 주형 개발, 4행정 스쿠터 엔진 개발 등 부품 자립화에 성공했다. 

 

당시 오토바이 관련 업체들은 부품을 사들여 조립하는 수준이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주형을 만들고, 엔진을 개발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리슈푸의 모험은 기업을 성장시켰다. 일본 및 대만제 오토바이 브랜드를 물리치기 시작했고, 중국 내 스쿠터 판매 부문 상위권, 32개국 수출실적을 기록한다.

 

중국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9년 한 해 동안 43만 대의 스쿠터를 판매했다고 한다. 당시 15억 위안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는데, 오늘날 금액으로 환산하면 2,566억 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지리자동차의 시작


오토바이 사업으로 기업 규모를 키우던 리슈푸는 1997년 국영기업들의 텃밭이었던 승용차 시장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우선 그는 과거의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매입 가능한 자동차 기업을 물색했고, 교도소 소유 자동차 공장 인수로 지리자동차를 설립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가 인수한 곳은 정부에서 2도어 쿠페 차량만 생산하도록 제약을 둔 곳이었다. 리슈퓨는 세단 모델 생산 등에 대해 정부 인증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 허가받지 않은 채 몰래 세단 모델 생산 공장을 차렸다. 이때 지리자동차의 첫 모델 ‘하오킹(열정)’ 을 출시한다. 

 

지리자동차는 2000년대 들어서도 세단 생산 허가를 받지 못해 불법 경영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생산량 증가에 따른 공장 신설을 진행할 때 자동차 공장이 아닌 오토바이 공장으로 위장 신고를 하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모험을 계속한다.

 

리슈푸는 지리자동차 설립 이후 중국 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생산 허가를 위한 로비를 벌였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오죽했으면 “내게도 실패할 기회를 달라!”라고 외쳤을까? 그래도 리슈푸의 노력은 헛수고가 아니었다. 

  


옛 속담에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다. 그의 열정을 지켜본 중국 전역의 자동차 전문가들은 정부에 지리자동차에게 정식 허가를 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고, 2001년 말 정식으로 국가 공인 자동차 제조사가 되었다.

  

언제나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지리자동차



정부의 허가로 자유로워진 지리자동차는 내수시장 점유율 확보 전략을 펼치게 된다. 창립자 리슈푸는 고급화 전략보다 소득 증가에 따른 저가형 자동차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경제 상황을 참고해 저가 모델 개발 및 생산에 집중한다.

 

그러나 체계적인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해 인부들의 수작업 능력과 기본 공구 사용 등 조악한 환경 속에서 4만 위안(684만 원) 이하 저가 모델을 생산했다. 가격 경쟁력 덕분에 내수 시장 점유율 상승을 이끌어 낼 수 있었지만, 엉망인 품질과 더불어 열악한 업무 환경, 방만 경영으로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된다.

 

리슈푸는 경영 문제 해결을 위해 저장성 세무국 수석 회계사였던 쉬강을 지리자동차 사장으로 임명했고, 본인의 집무실까지 내주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나갔다. 게다가 친인척으로 가득했던 고위급 임원진의 90%를 해고했으며, 대신 실무에 능한 천 명의 중간 급 관리자를 채용했다.

  


강력한 구조조정 덕분에 정부는 다시 지리자동차를 신뢰하게 되었고, 은행에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발판 삼아 2002년에는 ‘상하이 지에스다’ 인수 후 ‘메이플’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 때부터 저가 모델 외에 중가 및 고가 모델까지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지리자동차-메이플 완전 합병 대신 메이플이 독립 운영체제 보장을 선택했다.

 

2007년에는 자동차 부품 가격을 낮추도록 압박하는 운영방식을 과감히 버렸다. 리슈푸는 “낮은 부품 가격은 낮은 품질을 불러올 뿐이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선양 진베이 자동차 출신 기술 최고 경영자(CTO)를 영입하고 CCVT엔진 개발 등 기술 자립을 시도했다. 

  


지리자동차의 노력은 2008년 베이징 모터쇼에서 중/고가 승용차, MPV, SUV, 스포츠카 등 23종 모델 출시로 결실을 맺었다. 또한 2007년 18만 대 판매 실적을 기록한 이후 2009년 32만 대로 77.7% 실적 상승을 이루었다.

  

치밀한 계획, 볼보 인수



2007~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몰아 닥치자 포드는 산하 브랜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여기에는 볼보 또한 포함되어있었다. 리슈푸는 포드에 볼보 인수 의사를 밝혔지만, 무시당했다. 물론, 지리 자동차의 볼보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곧바로 투자은행 로스차일드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 시기 지리 외 중국 내 여러 자동차 제조사들이 인수 의사를 보이고 있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었지만, 정부가 볼보 인수 건에 대해 지리자동차를 지원하고 있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2009년 포드는 지리자동차에 6,473건의 볼보에 대한 문서를 제공했다. 지리자동차는 현장 방문 2회, 볼보 경영진 보고서 3건 검토, 인수 전문가들과 10회에 걸친 회의로 볼보에 대해 면밀히 알게 되었다. 또한 포드가 제시한 2천 페이지에 달하는 계약서를 글자 하나하나 살피며 1만 5천 개에 달하는 내용을 수정할 정도로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지리 자동차는 원활한 인수를 위해 볼보 인수의 정당성, 볼보를 더욱 발전시킬 계획, 브랜드 가치 향상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여기에 스웨덴, 벨기에 생산라인에서 계속 자동차를 생산하고 볼보 문화를 존중하겠다는 약속까지 더해졌다.

 

또한 지리와 볼보는 지적 재산권 협상을 위해 100회 이상의 전문가 회의, 천 페이지가 넘는 실사 서류를 7개국어로 준비해 일말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두 회사는 계속된 인수협상으로 지칠 대로 지쳤지만, 서로 최대한 배려하고 협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신뢰를 쌓았다.

 


2010년 중순, 볼보는 최종적으로 지리자동차로 인수되었고 그 규모는 2조 2천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브랜드 가치를 고려하면 저렴한 액수에 인수되었는데, 이는 지식 재산권 대다수를 포드가 계속 유지하고 지리자동차는 볼보의 브랜드, 생산 시스템, 안정성 등을 가져가는 것으로 계약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치밀한 계획, 우수한 협상팀, 비전 제시를 통한 신뢰 확보, 인수 기업에 대한 존중이 볼보 인수로 이어진 것이다.

  

지리자동차의 인수전략, 사실은 자동차 굴기?


지리자동차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벤츠 1대 주주가 되기 위해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벤츠 1대 주주 계획은 국가 규모 지원과 자문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것으로, 중국의 ‘자동차 굴기’전략의 일환이다. 

  


리슈푸는 약 9조 6천억 원 규모 자금력을 동원해 벤츠 지분 9.69%를 취득했다. 그는 “벤츠와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한 연합체 구성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벤츠 1대 주주 이전에는 말레이시아 프로톤 자동차와 영국의 로터스 자동차를 자회사로 함께 인수하기도 했다. 프로톤은 동남아 유일 완성차 제조사로, 말레이시아 국영기업이며 한때 말레이시아 내 점유율 70%를 달성할 정도로 거대한 기업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프로톤 자동차의 롤모델이 현대자동차라는 점이다. 과거 현대자동차의 성장 방식을 벤치마킹해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기업을 성장시켜 왔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시장 개방으로 인해 전 세계 제조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점유율 10%로 추락하면서 매물로 나오게 되었다.

 

지리자동차는 프로톤이 미쓰비시와 기술제휴를 통해 나름의 노하우를 축적한 점을 노려 인수전에 뛰어든 것이다.

  


특히 로터스 인수는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 인수 사례 중 하나다. 로터스는 영국 스포츠카 제조업체로 경량 차체에 대한 노하우로 유명한 기업이다. 지리자동차는 자사 모델 차체 개선 및 연비 향상 목적으로 로터스를 인수했다.

  

마치며...


지리자동차는 유명 기업 인수 등으로 덩치뿐만 아니라 기술력 또한 폭발적으로 개선되었다. 비교적 최근에는 볼보와 지리자동차가 콜라보 브랜드를 내놓기도 했다. 

  


볼보는 개선된 재무상태 덕분에 S90출시, 폴스타 인수로 고성능 모델 강화 등 다시 한 번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변방에 위치해 관심조차 없었던 지리자동차는 이제 거대 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전통 자동차 브랜드들이 경계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리자동차가 인수하거나 최대주주로 등극하면서 단순히 덩치를 키운 것이 아니라, 자사에 필요한 기술을 도입하고 글로벌 기업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을 하나하나 ‘전략적’으로 갖추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다.

 

과연 지리자동차는 과거의 도전 정신과 치밀함을 무기로 앞으로도 선전할 수 있을지, 그리고 다른 제조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기업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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