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어떻게 도망쳤지?" 르노-닛산 전 회장, 기상천외한 일본 탈출

Posted by TEXT ADMIN
2020. 1. 11. 13:02 자동차 뉴스

지난 31일 각종 포털과 언론사 사이트에 일제히 보도된 기사가 있다. 바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전 회장인 카를로스-곤의 일본 도주 소식이었다. 한 국가의 검찰과 법원 그리고 공항 시스템을 모두 바보로 만들어버린 곤 회장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대중은 대체 그가 누구이고, 현재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왜 이슈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키 포스트는 자동차 업계에서 굵직한 인물인 카를로스 곤에 대한 정보와 그의 지난날 마지막으로 이번 도주 사태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카를로스 곤? 누구지?

ⓒ Renault-Nissan-Mitsubishi Alliance

이름 : Carlos Ghosn Bichara
국적 : 브라질, 프랑스, 레바논
출생 : 1954
경력 : 미쉐린(1978~1996), 르노(1996~2019), 닛산(1999~2018), 미쓰비시(2016~2018)
 
카를로스 곤은 레바논계 브라질 태생이다. 유년기 브라질에서 태어나 7세 무렵 다시 레바논에 정착했고, 17세가 되던 해에는 프랑스로 건너와 학업에 매진한다. (시험 한 번에 프랑스 명문 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수재였다) 이후 대학 졸업을 마친 후 경제학 박사학위 과정 진행을 눈앞에 둔 당시 미쉐린 측의 러브콜로 직장인의 삶을 시작한다.
 
그는 직장을 갖게 된 이후 꽤 출세한 편에 속한다. (하긴, 거대 기업의 회장에 오를 정도의 인재라면 출세를 해야 가능한 일이다) 미쉐린에 취직한 지 3년째인 27세에 공장장을 역임했고, 이후 3년 뒤인 30세에는 브라질 현지 사장 자리에 올랐다. 여기서 멈출 그가 아니다. 34세에는 미쉐린 북미 지사장 35세에는 회장 자리까지 차지했다.
 
대기만성? 곤에게 그런 표현은 인생사를 통틀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어릴 적부터 꾸준히 성공-성공-성공만을 맛본 인물이다.

 

르노의 성공신화 곤

ⓒ Renault-Nissan-Mitsubishi Alliance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다시 한번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1996년 당시 르노의 회장이었던 루이 슈바이처(우리가 아는 그 슈바이처 박사님이 루이의 작은할아버지다.) 루이가 파워트레인 운영 및 제조 담당 부사장 자리를 제안하면서 르노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루이 슈바이처 회장이 카를로스 곤을 얼마나 이쁘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96 10월 르노로 자리를 옮긴 곤이 불과 2개월 만에 르노의 수석 부사장 직함을 가슴팍에 달 수 있었던 것을 볼 때, 곤이 확실히 인정받는 사내였음은 분명하다.
 
곤은 엄청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그의 파격적인 경영 방법인 '비용 개혁'에 그 이유가 있다. 그는, 회사의 수익성에 방해가 되는 요소라면 가차 없이 쳐내는 것에 능통하다.

ⓒ Renault-Nissan-Mitsubishi Alliance

 

르노에 첫발을 내디뎠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입사 5개월 차인 1997 3월 곤은 200억 프랑(97년 환율 기준 한화 약 6조 원)의 비용삭감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에게 붙은 별명 중 '코스트 킬러', '코스트 커터'라는 표현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곤은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르노에 부품을 공급하던 협력사 1,200개 중 150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계약을 해지했고, 벨기에에 있던 르노 생산 공장도 폐쇄했다. 당시 이 사건은 외교 문제로 번졌다고 한다. 마치 2018년 있었던 GM 사태와 유사한 사건이라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지만, 덕분에 르노는 불과 2년 만에 만년 적자를 벗어나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후, 곤은 말 그대로 경쟁자가 없는 르노 그룹 최상위 포식자나 마찬가지였다.

 

ⓒ Renault-Nissan-Mitsubishi Alliance

99년에는 르노에 도움을 요청한 닛산의 COO로 취임했으며 2001년 닛산의 CEO 자리까지 꿰찼다. 2002년 포천지가 선정한 올해의 기업인에 뽑힌 것만 봐도 그가 기업경영 측면에서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2004년에는 르노 회장직에서 물러난 루이 슈바이처의 뒤를 이어 회장직을 역임했고, 닛산의 회장도 겸임하는 등 글로벌 공룡인 '르노-닛산'의 우두머리가 된 순간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그랬듯 꾸준히 비용 혁신을 추구했다. 잘라내야 하는 것은 과감히 잘라내고, 얻을 것만 정확히 편취하는 데 능통한 그런 사람이었다.

 

곤의 수난시대

 

하지만, 본인에게는 그리 엄격하지 않았던 것 같다. 2018 11 19일 일본 도쿄 지검 특수부에 의해 긴급 체포됐는데 그 이유가 약 500억의 소득 신고를 고의로 누락하고 불법적인 개인 재산을 축적한 데에 있다. 그는 자택 구입 대금을 회사에 부담시키는 것은 물론 2011년부터 5년간 벌어들인 수익 999,800만 엔 중 50억 엔에 대해 소득 신고를 하지 않았다.

본문 내용과는 무관 / ⓒ darkside-550 - pixabay.com - CC0

당시 곤 회장의 검거는 특수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는데 그 속도가 매우 빠르고 깔끔하게 처리됐다. 일본에서 있었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레바논발 닛산 전용기가 하네다 공항에 착륙한 그때, 도쿄지검 특수부는 비행기 안으로 곧장 진입했고 이후 약 3시간 정도의 조사를 한 뒤 곤 전 회장을 압송했다.

우측에서 두 번째 인물이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CEO / ⓒ Nissan Global


곤 회장의 압송에 대해 일본을 제외한 주요 외신에서는 "닛산과 미쓰비시의 쿠데타가 벌어진 것이다"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의 진행속도가 지나칠 정도로 빠른 데다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당시 닛산CEO였던 사이카와 히로토가 심야 기자회견을 열고 곤 전 회장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이례적인 행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닛산과 미쓰비시는 분명 곤 회장에 대해 무언가 악감정이 있는 게 분명한듯 행동했다. 우선, 사건이 발생한 직후 기업 차원의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에는 가능한 이른 시간 내에 이사회 소집 후 곤 회장을 해임했다. 닛산의 경우22일 해임안에 통과됐고, 미쓰비시는 26일 해임안이 통과됐다. 사건 발생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우측에서 두 번째 인물이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CEO / ⓒ Nissan Global

언급한 두 회사의 모기업인 르노의 경우 자국 기업인인 곤에 대해 사건 발생 당시에는 말을 아끼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곤 회장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가 불거지자 2019 1월 그의 해임 절차에 착수했다.
 
곤 전 회장의 사건에 대해서는 프랑스 정부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르노는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의 국영 기업이나 마찬가지였고, 이후 프랑스 정부가 지분율을 꾸준히 낮춰왔으나 아직도 가장 강력한 의결권을 가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수사가 진행된 지 3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부터 그는 범죄자 신세를 벗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곤 전 회장의 보석 요구는 계속해서 기각되다가 2019 3월이 되어서야 허가가 내려졌다. 보석금의 규모가 엄청났는데 10억 엔(한화 약 100)에 달했다. 이후 다시 한번 체포되는 일이 있었지만,  3주 뒤에 다시 보석을 받아 나왔다.
 
이때 당시 보석 조건은 곤 전 회장의 아내인 캐롤 곤과의 접촉 금지였다. 이 밖에도 자택이 있는 도쿄 일대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곤 전 회장의 수사는 착실히 진행되는 듯 보였다.

 

일본을 탈출한 곤

 

곤 회장은 4월 보석 이후 비교적 조용하게 칩거 생활을 해왔다. 이슈라 할만한 일을 전혀 만들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출국을 막기 위해서 여권 모두를 곤 회장의 변호인이 보관하던 중이었고, 아내와도 어떠한 접촉을 할 수 없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12 31일 곤 회장이 사라졌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이는 일본 정부 처지에서도 굉장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일부 소문에 따르면 당시 일본 정부 관계자 중에는 이러한 사실을 뉴스를 통해 전달받은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곤의 변호사들도 이러한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피고인 관리 및 출입국 관리에 큰 오점을 남긴 일이기 때문에 망신살이 제대로 뻗쳤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12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에 음악단원의 모습으로 가장한 민간 경비 회사 그룹이 카를로스 곤 피고의 숙소에 들어갔고 이때, 그를 커다란 악기 상자에 숨겨서 외부로 탈출을 감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측에서 두 번째 인물이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CEO / ⓒ Nissan Global

일본 간사이 공항 사무소에 따르면 12 29일 밤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떠난 개인 제트기 1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곤 전 회장이 해당 제트기에 화물로 위장하여 불법 도주를 일삼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개인 항공기라 할지라도 출입국 심사는 물론 수하물 검사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 곤 회장이 제아무리 악기 상자든 플라스틱 상자든 관계없이 제대로 된 검사 절차만 있었어도 이번 도주 사태는 불가능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후, 곤 전 회장은 30일 오전에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했고 이후 레바논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2 31일 일본시간으로 오후 시각에 공식적으로 본인이 레바논에 있음을 드러냈다. "불공정과 정치적 박해에서 빠져나왔다. 마침내 미디어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됐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논제와는 관계가 없으나, 곤 전 회장 개인적 입장에서 한 가지 문제를 꼽자면 그가 보석금으로 낸 총 15억 엔(한화 약 150)이 전액 몰수됐다는 사실이다.

 

에디터 한마디

 

카를로스 곤 회장의 일본 도주 소식을 처음 접한 순간 분명 루머일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기업인 출신에 돈도 많고, 영향력이 쌔다 해도 일본이라는 대국을 상대로 탈출을 시도한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정말 웃기게도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성공해냈다.
 
그가 한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단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곤 전 회장 덕에 일본은 국제적으로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는 수모를 당했다. 다만, 카리스마 있고 능력 있던 르노의 회장이 맹수를 만난 산짐승처럼 꼬랑지를 내빼는 모습은 분명 아름답지 못하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응당 처벌을 받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영화 해바라기에도 이런 명대사가 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라더라"라는 대사다. 그가 얼라이언스의 우두머리로 있을 때만큼만 쿨하고 멋있게 이 일을 받아들였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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